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9차례 연속 동결했다. 고물가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꺾이지 않은 가계부채, 경기 부진,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따름 금융 리스크 등 인상과 인하 요인이 엇갈리면서 우선 관망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금리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도 동결 이유로 거론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2월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3.5%로 동결했다.
금통위는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7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9회 연속 금리 동결을 묶고 있다.
한은의 이번 금리 동결 배경으로는 우선 물가 불확실성이 꼽힌다. 1월 물가 상승률은 2.8%로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신선식품지수가 7년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중동 분쟁에 따른 국제유가 불확실성에 물가 불안도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최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 압력 약화,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위험)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지고 농산물 등 생활물가도 여전히 높다"며 "당분간 물가 둔화 흐름이 주춤해지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금융 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연한 통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가계빚은 1886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통화정책 운용도 물가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이제는 성장과 금융 안정으로 모아지고 있다. 저성장에 대한 우려에 금리 인상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섣부른 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늘어나는 취약차주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험도 적지 않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여파에 자금 경색 우려에 일부 건설사들의 신용 등급이 줄줄이 하향 조정되며 금융부실 경계심도 커졌다.
그렇다고 마냥 금리를 낮추기에는 미 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높다. 한은의 선제적 금리 인하는 현재 2%포인트인 한미 금리 역전차를 확대해 외환 시장 불안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1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3월 금리 인하 기대가 쪼그라든 데 이어 예상치를 웃돈 1월 미국 물가는 연준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하반기까지 밀어낸 상황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하향 안정화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높고, 미국과의 금리 차이 확대에 선제적으로 움직이기 힘든 만큼 우선 동결을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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